종친회 인명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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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대인물

경원[景源, 1709~1787]
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(hwgej@naver.com)작성일2022-10-13조회수108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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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* 생몰년 : 1709(숙종 35) - 1787(정조 11)

* 자 : 대경(大卿)

* 호 : 강한(江漢)

* 시호 문경(文景)

* 관직 : 대제학

* 세계 : 석부-균비-군서-희-치신-사장-섬-기준-열-정욱-혁-곤후-    상-이미-휘-처의-기-경원(18세)

문정공 정욱(廷彧) 8세손

이 재(李 縡)의 문인. 1727년(영조 3) 생원(生員)이 되고, 의금부도사(義禁府都事)를 역임.1740년 증광문과(增廣文科)에 병과(丙科)로 급제, 승문원(承文院)에 등용되었다.

그뒤 검열(檢閱) 병조좌랑(兵曹佐郞) 등을 지내고 1749년(영조 25) 홍문관응교(弘文館應敎)로 명나 라 의종(毅宗)의 추사(追祀)를 영조에게 건의, 이를 실시케 했고, 대사성(大司成), 대사간(大司諫) 대사헌(大司憲) 겸 대제학을 지냈다.

1761년(영조 37) 이조참판(吏曹參判)으로 고서(姑壻) 이 정(李 ?)의 상언사건(上言事件)에 연좌, 거제도(巨濟島)에 위리안치(圍籬安置) 이듬해 합천(陜川)에 이배(移配) 되었다.

유현(儒賢)으로서 특히 왕명으로 고향에 방환(放還) 후 복관(復官)되어 1763년 풍천부사(豊川府使)가 되고, 호조참판(戶曹參判) 동지돈령부사(同知敦寧府事) 홍문관제학(弘文館提學) 이조참판(吏曹參判) 겸 대제학(大提學), 이어 형조 예조 공조의 판서(判書)를 지냈다.

1776년 정조 즉위 초 이조판서에 이어 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사양, 판중추부사(判中樞府事)로 죽었다.

삼례(三禮 : 예기 주례 의례)에 정통하고 고문(古文)에 밝았으며, 일찍이 장정옥(張廷玉)의 명사(明史)를 읽고 홍광제(弘光帝)이하 3제(三帝)가 다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남명서(南明書)를 편찬했으며 또 우리나라 사람으로 중국 조정에 절의를 지킨 사람을 들어 명조배신고(明朝陪臣考)를 지었다. 글씨를 잘 썼다.

 

 저서에 《강한집(江漢集)》이 있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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